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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동료 한 명이 있었습니다. 회의 시간에 열심히 메모하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멍하니 창밖을 보곤 했죠. 중요한 보고서 제출 기한은 매번 하루 이틀 늦었고, 물건도 자주 잃어버렸습니다. 처음엔 그저 성격이 산만하고 정리가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한 부주의라기보다 어떤 패턴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가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간 이유도 바로 이 지점이었죠.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ADHD는 ‘활발하고 산만한 아이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인 ADHD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조용하고 점잖은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증상이 나타날 때 의사들은 확진을 내릴까요?
조용한 ADHD, 발견이 늦어지는 이유
저 역시 학창 시절, 시험지를 풀 때 문제 하나를 빼먹는 일이 잦았습니다. “다음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라는 문제에서 답이 눈앞에 있어도 놓치곤 했습니다. 단순히 부주의한 성격이라 여겼지만, 사실은 ‘세부적인 주의력 결핍’이 ADHD의 전형적인 신호일 수 있습니다.
조용한 유형의 ADHD는 과잉 행동이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에 더 늦게 발견됩니다. 강의를 들어도 10분만 지나면 다른 생각이 흘러들고, 보고서를 작성하다가도 곁길로 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면 끝까지 이어 가지 못하고, 다른 일로 넘어가 버리는 패턴이 반복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집중을 못 해서 ADHD? 아니에요.” 라는 착각
많은 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ADHD 아닙니다. 왜냐면 좋아하는 게임이나 취미에는 세 시간도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역시 오해입니다. 성인 ADHD는 집중을 못하는 게 아니라, 집중의 강약을 조절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필요할 때는 흐트러지고, 오히려 불필요할 때는 과몰입하는 것이죠.
실제로 제 지인도 보고서 작성은 한 페이지도 힘들어하면서, 관심 있는 드라마는 밤새 몰아보곤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의지가 부족하다’고 비난했지만, 의학적으로는 ADHD의 전형적인 특징이었습니다.
산만하고 시끄러운 유형, 도파민의 문제
다른 한편으로는 ‘시끄러운 유형’의 ADHD도 있습니다. 회사 회의실에서 다리를 계속 떨거나, 손가락을 멈추지 못하는 동료를 본 적 있으신가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뇌의 도파민 부족에서 기인하는 ADHD의 증상일 수 있습니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차례를 기다리지 못하고, 대화 중간에 끼어들기도 합니다. 말이 장황하게 길어져 듣는 사람이 지칠 때도 있죠. 한 번은 제 앞자리 동료가 주말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 얘기, 옷 얘기, 영화관 직원 얘기까지 이어져 20분이 지나서야 본론에 도달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엔 웃어넘겼지만, 지금 생각하면 전형적인 ADHD의 충동적 말하기 증상이었습니다.
일상에서 자주 보이는 신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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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시간과 마감일을 자주 놓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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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안경, 지갑 같은 소지품을 반복적으로 잃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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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이나 방이 정리가 잘 안 되고 늘 어질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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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과제를 미루다가 벼락치기로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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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도중 흐름을 놓치거나 방금 들은 이야기를 금세 잊는다.
이런 특징들은 단순히 게으르거나 무책임해서가 아닙니다. ADHD라는 뇌의 특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확진의 기준과 치료
정신과 의사들은 자가 진단이 아닌, 명확한 기준으로 ADHD를 판별합니다. 조용한 유형과 과잉 행동형 각각 9가지 증상 중 5개 이상이 충족되면 ADHD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산을 백 번 잃어버렸다” 같은 단편적 경험만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치료는 안경을 쓰는 것과 비슷합니다. 근시는 안경을 쓴다고 완치되지 않지만, 안경 덕분에 일상을 원활히 살 수 있죠. ADHD도 약물이나 인지 행동 치료를 통해 뇌의 도파민 균형을 맞추면 집중력과 생활 안정성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꾸준히 치료를 받으면, 원래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게으름이 아니라 뇌의 문제
성인 ADHD는 게으름이나 의지 부족이 아니라, 뇌의 신경전달물질 불균형에서 비롯된 특성입니다. 실제로 많은 ADHD 환자들이 사회적으로 큰 성취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마이클 펠프스 같은 세계적 수영 선수도 ADHD를 극복해 최고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혹시라도 스스로가 설명하기 어려운 집중력 문제, 반복되는 실수와 잦은 잃어버림 때문에 힘들어한다면,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를까”라고 자책하기보다 전문의와 상담을 권해 드립니다. 그때 비로소 당신이 가진 원래의 잠재력이 빛을 발할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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