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느끼는 최고 고통의 끝: 총알개미·슈미트 척도·극한 통증에서 뇌는 무엇을 할까

고통과 뇌 관련 일러스트
 나는 예전에 유튜브에서 한 남자가 총알개미에게 쏘이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쏘이고 나서 정확히 3초 만에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비명이 아니라 신음에 가까운, 어떤 통제할 수 없는 소리였다. 그는 땅바닥을 구르며 24시간 동안 고통에 시달렸다. 나는 그 영상을 끝까지 보지 못했다. 너무 생생했다.

그날 이후 나는 고통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의 끝은 어디일까? 그리고 그 끝을 넘어서면 우리 몸은, 우리 뇌는 어떻게 반응할까? 이 글은 그 질문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고통은 상처가 아니라 해석이다

우리는 고통을 물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칼에 베이면 아프고, 불에 데이면 아프다.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보면 고통은 상처 그 자체가 아니다. 뇌가 만들어낸 하나의 해석이다.

피부와 근육, 장기 곳곳에는 통증 수용기라는 센서가 박혀 있다. 이들이 강한 열이나 압력, 화학적 자극을 감지하면 전기신호를 척수로 보낸다. 그 신호는 뇌로 올라가고, 시상이 분류하고, 대뇌피질이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를 계산한다. 그리고 변연계가 감정을 덧붙인다. 두려움, 공포, 절망.

그렇게 완성된 게 우리가 느끼는 '고통'이다. 같은 상처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고통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뇌가 만든 주관적 경험이다.

고통에도 한계가 있을까

의학에서는 고통을 숫자로 표현하려 한다. 0부터 10까지, 혹은 0부터 100까지. "지금 얼마나 아프십니까?" 병원에서 의사가 묻는 질문이다. 하지만 이건 기준이 모호하다. 내가 느끼는 8은 다른 사람의 5일 수도 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고통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시작한다는 것.

엔도르핀이 쏟아진다. 몸속에서 만들어지는 천연 마약이다. 도파민도 분비된다. 뇌를 진정시키기 위한 보상 시스템이다. 그래도 안 되면? 의식이 흐려진다. 기절한다. 아예 스위치를 내려버린다.

어떤 사람들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해리를 경험한다. 몸은 고통받고 있지만 자신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 상태. 전쟁 생존자나 사고 피해자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반응이다. 뇌가 고통과 자신을 분리시켜버리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에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넘어서면 뇌는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게 만든다. 생존을 위해서.

통증 관련 뇌 및 신경계 참조 일러스트

고통의 시인

저스틴 슈미트라는 곤충학자가 있었다. 그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150종이 넘는 벌레에게 직접 쏘이면서 그 고통을 기록했다. 4단계로 나누어서.

1단계는 가볍고 금방 잊히는 통증. 2단계는 일상에서 겪는 찌릿한 정도. 3단계는 격렬하고 지속되는 고통. 그리고 4단계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수준.

사람들은 그를 "고통의 시인"이라고 불렀다. 그는 단순히 숫자만 기록한 게 아니라 고통을 문장으로 표현했다. "용암에 발을 넣은 듯하다", "전기톱이 뼈에 닿는 느낌", "살이 벗겨지는 것 같다".

슈미트의 척도는 과학적으로 완벽하지 않다. 주관적이고, 표본이 한 사람에게 편중되어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설득력이 있다. 그가 직접 겪었기 때문이다. 그는 고통을 이론이 아니라 경험으로 이야기했다.

4점의 세계

슈미트 척도에서 4점을 받은 곤충은 세 종류다. 총알개미, 타란툴라 호크, 그리고 페퍼 박쥐벌.

총알개미는 24시간 지속되는 지옥이다. 슈미트는 이렇게 썼다. "용암 속을 걷는 것 같다. 부러진 뼈가 못 위에 서 있는 느낌이다." 남미 일부 부족은 성인식에서 이 개미가 가득 든 장갑을 끼는 의식을 치른다. 견디는 게 용기의 증명이라고 믿는다.

타란툴라 호크는 단 5분만 지속된다. 하지만 그 5분은 지옥이다. 슈미트의 조언은 간단했다. "그냥 누워서 소리를 지르세요. 다른 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겁니다."

페퍼 박쥐벌은 살이 벗겨지는 느낌이라고 한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소름이 돋았다. 살이 벗겨진다는 건 비유가 아니라 정말 그렇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반대편 끝에는 꿀벌이 있다. 2점. 짧고 뾰족한 찌름. 우리가 여름에 가끔 겪는 그 정도. 그래도 아프긴 하다.

좌측부터 총알개미,타란툴라 호크,워리어 와스프 일러스트

고통의 끝에서 뇌가 하는 일

극한의 고통 속에서 뇌는 놀라운 일을 한다. 신경계 전체가 비상 모드로 전환된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혈압이 치솟는다. 호흡이 가빠진다. 근육이 경직된다. 교감신경이 폭주하는 상태다. 몸은 도망가거나 싸울 준비를 한다. 하지만 고통은 외부의 적이 아니다. 몸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도망갈 수가 없다.

그래서 뇌는 다른 전략을 쓴다. 엔도르핀을 쏟아붓는다. 자체 제작 모르핀이다. 도파민도 풀어놓는다. 보상 시스템을 가동해 뇌를 진정시키려 한다. 그래도 고통이 계속되면?

통증 신호 자체를 줄여버린다. 체성 감각 피질이 과부하 상태가 되면, 뇌는 오작동을 막기 위해 신호를 차단한다.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오면 시스템이 무너진다. 그래서 일부러 둔화시킨다.

그리고 마지막 수단. 의식을 끈다. 기절이다. 뇌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하는 순간, 스위치를 내린다. 고통을 느끼려면 의식이 있어야 한다. 의식이 없으면 고통도 없다.

통증과 뇌 관련 참조 일러스트

마치며: 고통은 적이 아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고통은 적이 아니라는 것. 고통은 뇌가 우리를 살리기 위해 보내는 신호다.

"여기가 다쳤어. 조심해. 더 이상 쓰지 마."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상처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를 것이다. 손이 타들어가는데도 불에서 떼지 않을 것이다. 뼈가 부러졌는데도 계속 걸을 것이다.

동시에 고통이 너무 강하면 뇌는 그걸 차단한다. 생존을 위해. 고통도 견딜 수 없는 수준이 되면 오히려 해가 되기 때문이다.

슈미트의 척도는 흥미롭다. 한 남자가 150종의 벌레에게 쏘이면서 만든 기록이다. 과학적으로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기록은 우리에게 하나의 진실을 보여준다. 고통은 측정할 수 있고, 비교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고통에는 끝이 있다는 것. 뇌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까지 살리려고 한다. 그게 고통의 진짜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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