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저씨』를 보며, 이선균을 생각하다

나의 아저씨 관련 이선균 일러스트
 “니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

다른 사람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네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모든 일이 그래. 항상 니가 먼저야.”

그때는 그 말이 세상에 치이지 말라는 위로처럼 들렸다.
지나간 일에 너무 붙들리지 말라는 조언처럼 들렸다.

그런데 지금 다시 들으면, 그 문장은 이상하게 아프다.


그는 잘못이 없었던 사람이 아니다

이 글을 쓰면서 그 사실을 지우고 싶지는 않다.

그는 공인이었고,
가족이 있었고,
적어도 도덕적으로 비판받을 여지는 분명히 있었다.

실망한 사람들도 이해된다.
비판하는 목소리도 이해된다.

공인은 사적인 선택조차 공적인 평가를 받는다.
그건 직업의 속성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한 발 더 묻고 싶다.

잘못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곧 그 잘못이 되어야 하는가.

실망은 가능하다.
질타도 가능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비판’을 넘어 ‘매장’에 가까운 태도로 기울어 있지 않았을까.


언론의 속도와 여론의 체온

나는 솔직히, 그 과정이 너무 빨랐다고 느낀다.

의혹은 제목이 되었고,
제목은 이미지가 되었고,
이미지는 인격 전체를 덮어버렸다.

언론은 사실을 전한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그 사실이 어떤 프레임 안에서 소비되는지도 알고 있다.

자극적인 단어는 클릭을 부르고,
반복된 보도는 인상을 굳힌다.

해명은 있어도,
정정은 있어도,
이미 형성된 분위기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인간이
비난을 감당해야 할 몫 이상으로
‘공적 분노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나는 그게 계속 마음에 남는다.


그래도, 버텨줬으면 좋았을 텐데

이게 내 솔직한 감정이다.

그래도 버텨줬으면.
그래도 좀 더 뻔뻔했으면.
그래도 자숙하고, 반성하고, 다시 작품으로 돌아왔으면.

대중은 생각보다 잔인하지만, 동시에 생각보다 금방 잊는다.
시간은 결국 다른 뉴스로 넘어간다.
논란은 다른 이름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수많은 사례를 봐왔다.
자숙 후 복귀.
논란 후 재기.
시간이 흐른 뒤 재평가.

그 길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아쉽다.

그가 연기했던 인물들은
끝까지 버티는 사람들이었는데,
현실의 그는 그 무게를 혼자 감당해야 했던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화면 속 캐릭터의 강인함을
현실의 배우에게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 기대는 너무 무거웠을까.


사람은 캐릭터가 아니다

그는 늘 누군가를 다독이는 역할이었다.
상처를 확대하지 않고,
조용히 옆에 서 있는 인물.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통해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배우는 역할이 아니다.
배우는 인간이다.

인간은 약하다.
실수한다.
무너진다.

우리는 공인에게
도덕성, 이미지 관리, 멘탈, 책임감, 침묵, 품위
모든 것을 동시에 요구한다.

그리고 그 중 하나라도 흔들리면
전체를 부정한다.

그는 잘못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잘못 그 자체는 아니었다.

그 차이를 우리는 끝까지 구분했는가.


“항상 니가 먼저야”라는 말의 다른 의미

그 대사는 원래 이런 뜻이었다.
세상의 시선보다 네 해석이 먼저라고.

그런데 지금 나는 이렇게 들린다.

남을 대하는 태도도 우리가 먼저 선택할 수 있다고.

우리가 먼저 기다릴 수 있었고,
우리가 먼저 속도를 늦출 수 있었고,
우리가 먼저 한 사람을 사건으로 환원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어쩌면 자기 자신을 먼저 지키지 못했다.

그게 제일 마음이 아프다.


남는 감정은 단순하지 않다

나는 그를 미화하지 않는다.
그를 완전히 옹호하지도 않는다.

동시에, 그를 한 사건으로만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그는 누군가에게 위로였고,
어떤 사람의 청춘 한 구간에 남아 있고,
어떤 밤에는 여전히 그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남는 감정은 단 하나가 아니다.

실망도 있고,
분노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조금만 더 버텨줬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가 요구한 완벽함 대신
그가 인간으로 남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가 남긴 대사는 여전히 살아 있다.

“아무것도 아니야.”

이제 그 말은
우리가 그를 향해 조심스럽게 건네는 인사처럼 들린다.

당신은 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한 역할도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실을 조금 늦게 깨달았습니다.

배우 이선균 활짝 웃는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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