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유튜브에서 SSU 특수부대 훈련 장면을 보다가 한 댓글에서 시선이 멈췄다.
댓글에는 자신도 SSU를 꿈꿨지만, 바닷물 속에서 눈을 뜨고 시야를 잡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는 경험이 적혀 있었다. 그것이 유전적인 한계였던 것 같다는 표현도 있었다. 그 이후에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글 전체에는 체념에 가까운 뉘앙스가 느껴졌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 역시 물속에서 눈을 떴다가 바로 포기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수영장이었는지 계곡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눈을 뜨는 순간 따가움이 번졌고, 시야는 생각보다 훨씬 흐릿했으며, 무엇보다 설명하기 어려운 공포가 밀려왔다는 건 또렷하다. 눈을 뜨는 행위 자체도 부담이었지만, 떠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그 느낌이 더 불안했다. 혹시 눈에 이상이 생기지는 않을지, 물속의 병원균 때문에 시력이 나빠지지는 않을지, 어린 마음에는 과장된 상상까지 겹쳐졌다. 그때 나는 조용히 결론을 내렸다. 나는 물속에서 눈을 잘 못 뜨는 체질일지도 모른다고.
그 기억이 다시 떠오르면서 질문이 하나로 모였다.
물속에서 눈을 뜨고, 나아가 시야까지 확보해 상황을 인지하는 능력은 정말 유전의 영역일까, 아니면 적응의 결과일까.
눈을 뜨는 것과 ‘보는 것’ 사이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문제처럼 보인다. 눈을 뜨느냐, 못 뜨느냐.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질문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눈을 뜨는 것은 물리적인 행위이지만, ‘보는 것’은 훨씬 복합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물속에서는 빛이 산란되고, 부유물이 떠다니며, 거리 감각이 왜곡된다. 시야는 애초에 선명하지 않다. 그 상태에서 우리는 흐릿한 정보를 조합해 방향을 판단하고, 공간을 추정해야 한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눈꺼풀을 열 수 있느냐가 아니라, 열린 상태에서 얼마나 인지를 유지할 수 있느냐에 있다. 따가움과 압박감, 낯선 감각이 동시에 밀려오는 환경에서 뇌는 본능적으로 ‘위험’ 신호를 보낸다. 심박은 빨라지고, 호흡은 거칠어지며, 판단은 흐트러진다. 그래서 물속에서의 시야 확보는 단순한 시각 문제가 아니라, 감각과 인지가 동시에 시험받는 상황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따가움은 생리이고, 공포는 해석이다
바닷물의 염도는 눈물보다 훨씬 높다. 그 차이 때문에 각막은 강한 자극을 받는다. 따가움과 작열감은 정상적인 반응이다. 여기까지는 생리학의 영역이다. 그런데 같은 자극을 두고도 어떤 사람은 비교적 침착하게 견디고, 어떤 사람은 강한 불안을 느낀다. 이 지점에서 차이가 생긴다.
통증은 신체 반응이지만, 그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뇌다. 눈이 따가운 순간, 뇌가 그것을 치명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이면 공황이 증폭된다. 반대로 ‘불편하지만 통제 가능하다’고 해석하면 반응은 훨씬 안정적이다. 그래서 물속에서 시야를 확보하지 못하는 이유는 눈이 약해서라기보다, 자극을 위협으로 확대 해석하는 신경계 반응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보면 문제는 감각이 아니라 해석, 즉 적응의 문제로 옮겨간다.
유전인가, 적응인가
그렇다면 정말로 선천적인 한계가 존재할까. 현재까지 알려진 과학적 근거로는 물속에서 눈을 뜨는 능력을 완전히 좌우하는 특정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증거는 없다. 물론 개인차는 있다. 각막의 민감도나 눈물막의 안정성 같은 요소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자극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의 문제가 아니라 ‘속도’의 문제에 가깝다.
반복 노출은 신경계를 학습시킨다. 처음에는 강하게 느껴지던 자극이 점차 예측 가능한 것으로 바뀌고, 뇌는 그것을 덜 위협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한다.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반응의 강도는 낮아진다. 더 나아가 흐릿한 시야 속에서도 필요한 정보만을 추려내는 능력이 생긴다. 완벽하게 보이지 않아도 방향을 읽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결국 물속에서 눈을 뜨고 시야를 확보하는 능력은, 특별한 체질의 산물이라기보다 불편함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인지를 안정시키는 과정의 결과에 더 가깝다.
마치며: 우리가 진짜 두려워하는 것
이 질문이 오래 남는 이유는 단순히 물속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낯선 환경에 놓이면 쉽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원래 이런 체질이 아니라고, 저건 타고난 사람만 가능한 영역이라고. 그 말은 우리를 보호해주지만 동시에 멈추게도 만든다.
물속에서 눈을 뜨는 순간은 짧지만 상징적이다. 따갑고, 흐릿하고, 방향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잠시 눈을 뜨고 주변을 읽어내려는 시도. 그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불편함을 견디는 태도와 닮아 있다.
그래서 결론은 단정적이지 않다. 완전히 유전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전적으로 훈련이라고 단순화하기도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적응의 여지가 생각보다 훨씬 넓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자극 자체가 아니라, 자극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일지도 모른다.
물속에서 눈을 뜨는 능력은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 속에서도 조금 더 오래 눈을 열어두는 사람에게 천천히 주어지는 능력이라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