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이 제일 먼저 지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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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나는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 모든 것에 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탁이 오면 들어줬고, 늦은 밤 전화가 오면 받았고, 불편해도 웃으며 자리를 지켰다. 그게 나라는 사람의 방식이라고 믿었다. 배려하고, 챙기고, 끝까지 함께하는 사람.

그런데 40대가 되면서 불편한 것 하나를 발견했다. 내가 가장 많이 내어준 사람들이 꼭 그만큼 돌려주지는 않는다는 것. 그리고 더 불편한 건, 어느 순간 내 시간과 에너지가 누군가에게 당연하게 쓰여도 되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었다는 것.

그때 알았다. 문제는 상대가 아니었다. 내가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착함이 함정이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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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해서 생기는 피로와, 누군가의 기대를 끊임없이 흡수하다가 오는 피로는 다르다.

야근은 실력 부족의 당연한 대가라고 말하는 상사. 피곤한 날에도 집안일이 소홀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배우자. 한밤중에 걸려오는 친구의 하소연 전화.

성실하고 좋은 사람일수록 이런 상황에서 상대를 탓하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를 탓한다. 내가 더 잘하면 되는 거 아닐까.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되는 거 아닐까.

그런데 일을 잘 못한다는 게 함부로 대접받아도 되는 이유는 아니다. 피곤한 날 집안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게 비난받아야 할 이유도 아니다. 그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몸이 먼저 익숙해져 버린다.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거라고, 이게 내 자리라고.

함부로 대접받는 것에 익숙해지는 순간, 자기 자신을 가치 없는 사람으로 느끼기 시작한다. 그게 가장 무서운 부분이다.


모두에게 사랑받으려는 삶의 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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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내내 나는 누군가에게 미움받지 않으려고 애썼다.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의 식사 자리에 나갔고, 불편한 모임에서도 웃었고, 하고 싶은 말을 삼키며 분위기를 맞췄다. 그게 사회생활이고 어른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 모든 노력의 대부분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내가 가장 열심히 맞춰준 사람들은 대개 내 노력을 가장 적게 알아챘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에서 조금씩 나 자신을 잃어갔다.

남을 위한 가면을 오래 쓰다 보면 정말로 자신을 싫어하게 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처음엔 과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그 말이 실감이 났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보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볼지가 먼저 떠오르는 순간이 생겼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모두와 잘 지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런데 그 말은 사실 불가능한 요구다.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고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다. 그 불가능한 목표를 위해 자신을 계속 소모하는 것, 그것이 진짜 문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사이로 남는다. 그 정도의 거리감으로 충분하다. 모든 관계에 같은 에너지를 쏟을 필요는 없다.


타인의 행동을 해석하느라 지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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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가 되면서 내가 또 하나 알게 된 것이 있다.

사람들의 행동에 의미를 찾으려는 습관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갉아먹는다는 것이다.

답장이 늦게 왔다. 오늘따라 표정이 어둡다. 평소와 다르게 반응이 없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가지고 이유를 찾고, 내가 뭔가 잘못한 것인지를 따지고, 관계가 흔들리는 건 아닌지를 걱정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그 행동들은 나와 아무 관련이 없다. 그 사람이 그날 바빴을 수도 있고, 피곤했을 수도 있고, 단순히 핸드폰을 못 봤을 수도 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그때그때 감정도 다르다.

타인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제멋대로 해석하기 시작하면, 결국 그 사람의 기분에 내 감정이 좌우된다. 그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행동했는데, 나만 혼자 그것을 가지고 하루를 보내는 셈이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순간, 내 감정의 주도권이 상대에게 넘어간다. 인정받지 못해도 삶은 계속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해결해준다.


나만의 규칙을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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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도움이 됐던 건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었다.

미리 정해두는 것. 어디까지 할 수 있고, 누구를 위해 할 것인지를.

밤 일정 시간 이후의 전화는 받지 않는다. 돈을 빌려달라는 요청에는 내가 잃어도 괜찮은 금액만 준다. 야근이 일정 시간을 넘어가면 그냥 감수하지 않고 상사와 이야기한다.

이것이 냉정한 사람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런데 사실은 반대다. 이 규칙들이 있어야 내가 오래 갈 수 있고, 오래 가야 진짜로 도움이 될 수 있다. 완전히 소진된 사람은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 규칙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내가 진심으로 베풀고 싶은 사람에게는 기꺼이 더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단호하게 선을 그을 수 있다. 그 구분이 생길 때 비로소 관계가 소모가 아닌 교환이 된다.


내가 행복한 것이 무엇인지 찾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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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제일 오래 걸렸다.

해야 하는 것들에 너무 익숙해지다 보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게 된다. 남이 말하는 행복의 기준이 내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성공, 인정, 안정. 이것들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진짜 내 것인지 물어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아무도 없는 아침에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그게 생각보다 좋다는 걸 알았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 감각이 진짜라는 게 느껴졌다.

작은 것들을 적어보는 게 도움이 된다. 오늘 뭐가 좋았는지, 어떤 순간에 긴장이 풀렸는지. 행복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면, 반대로 무엇을 잃고 싶지 않은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그 답이 의외로 솔직하다.


결국 알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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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가끔 지나치게 설명하고, 지나치게 맞춰주고, 상대의 기분을 내 것처럼 챙긴다.

다만 이제는 그걸 안다. 그리고 아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게 달라진다.

함부로 대접받는 것은 내가 감수해야 할 일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으려는 노력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내가 가진 에너지는 유한하고, 그것은 먼저 나를 위한 것이다.

이것이 냉정한 삶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오래 가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래 가야 진짜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선을 긋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말, 40대가 되어서야 조금씩 실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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