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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이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분명히 잘 해줬다. 시간도 내줬고, 돈도 썼고, 신경도 썼다. 그런데 돌아오는 건 고마움이 아니라 당연함이었다. 심한 경우엔 더 해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하거나 뒤에서 욕을 먹었다. 그 황당함과 억울함을 어디에 털어놓지도 못하고 그냥 삭혀야 했다.
40대가 되면 이런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생긴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착하게 살면 안 되는 건가.
결론부터 말하면, 착하게 사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방식이 잘못됐던 것이다.
1. 범위 없는 도움은 상대를 망친다
직장인이라면 이런 상황이 익숙할 것이다.
후배가 뭔가를 부탁해온다. 거절하기가 애매해서 그냥 할게 하고 받아온다. 처음엔 고마워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도 해달라, 저것도 봐달라가 된다. 어느 순간 당연히 해줘야 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그러다 한 번 못 해주면 서운해한다.
처음에 범위를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처음부터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무의식적으로 이 사람은 끝까지 해줄 사람이라고 인식한다. 그 기대가 커질수록 나중에 못 해줬을 때의 낙차도 커진다.
반대로 처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명확히 말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상대는 그 범위 안에서 감사함을 느낀다. 기대치가 처음부터 설정되어 있으니 실망도 없다.
오늘 딱 한 시간만, 이것까지는 할 수 있는데 저건 어렵다. 이 말이 처음엔 야박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오히려 더 정직한 배려다. 내가 지킬 수 있는 선을 말하는 것이 상대를 존중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2. 다 받아주기만 하면 관계가 기운다
누군가 도와주겠다고 하면 괜찮아 내가 할게 하고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랬다. 상대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상대방은 나에게 뭔가 해주고 싶다. 그런데 내가 계속 받지 않으면 상대는 항상 받기만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불편해진다. 관계가 수평이 아니라 내가 위, 상대가 아래가 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그 불편함이 쌓이면 멀어진다.
작은 부탁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밥을 사고 나서 있다가 붕어빵이나 한 봉지 사줘 이렇게 말하는 것.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상대에게 나도 이 사람에게 뭔가 해줄 수 있다는 기쁨을 준다. 그게 관계를 수평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완벽하게 다 해주는 사람 옆에 있으면 오히려 불편하다. 작은 빈틈을 보여주는 사람이 더 오래 곁에 남는다.
3. 침묵이 때로는 가장 큰 배려다
사업이 잘 안 됐다, 자식이 말을 안 듣는다, 건강이 안 좋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는 보통 뭔가 말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로의 말, 조언, 내가 그때 말했잖아 같은 것들.
그런데 솔직히 돌아보면 내가 그런 말을 한 이유가 정말 상대를 위해서였는지 모르겠다. 내 지혜를 보여주고 싶거나, 나는 저런 실수를 안 했다는 걸 확인받고 싶었던 게 아니었는지.
실제로 힘든 순간에 가장 위로가 됐던 사람은 뭔가를 말해준 사람이 아니라 그냥 옆에 있어준 사람이었다. 아무 말 없이 술잔을 채워주거나, 그냥 딴 얘기를 꺼내주거나, 모른 척해준 사람.
누군가의 허물을 보고도 말하지 않는 것, 실패를 알고도 못 본 척해주는 것. 이게 말 열 마디보다 더 깊은 신뢰를 만든다. 그 침묵 덕분에 상대는 이 사람 앞에서는 내가 실수해도 안전하다는 걸 느낀다.
입을 닫는 것도 능력이다. 그리고 그게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4. 불쌍해서 돕지 말고 의지가 생겼을 때 도와라
젊을 때는 힘들어 보이면 일단 도왔다. 그게 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가 이상한 경우가 많았다. 도와줬는데 오히려 더 당연하게 여기거나, 더 요구하거나, 심한 경우엔 원망까지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됐다. 상대가 스스로 뭔가 하겠다는 의지가 생기기 전에 도움을 주면 그게 독이 된다는 것을. 결핍을 채워주는 것과 의지를 응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그저 힘들다고 한탄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과, 이렇게 해보려 한다며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을 밀어주는 것은 결과가 다르다. 전자는 의존을 만들고, 후자는 성장을 만든다.
도움의 손길은 아껴둘수록 귀해진다. 꼭 필요한 순간, 꼭 필요한 사람에게 쓰여야 진짜 의미가 생긴다.
마치며
베풀었는데 무시당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억울함은 진짜다.
그런데 어느덧 중년이 되어 돌아보면 그 상황을 만든 데 내 역할도 있었다는 게 보인다. 범위를 정하지 않고 주었고, 상대가 줄 기회를 막았고, 침묵해야 할 때 말했고, 의지 없이 결핍만 채워줬다.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는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다만 방식이 중요하다. 경계 없는 친절은 나를 소진시키고 상대를 망친다. 내 삶의 주도권을 지키면서 도울 때 관계도 살고 나도 산다.
그게 40대가 되어서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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