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솔직히 말하면 나는 꽤 예민한 편이다.
카톡에서 지인이 별 뜻 없이 한 말 한마디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돈다. 카톡 답장이 늦으면 내가 뭔가 잘못한 건가 싶어서 자꾸 신경이 쓰인다. 별 이유도 없이 아침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저녁이 되면 왜 그랬을까 싶은 말을 또 내뱉고 후회한다.
40대가 되면 이런 감정 기복이 좀 잦아들 줄 알았다. 경험도 쌓였고 그만큼 단단해졌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오히려 더 예민해진 느낌이 드는 날도 있다.
그런데 최근에 이게 성격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뇌 구조의 문제였다.
40대에도 뇌는 아직 석기 시대다
뇌 안에 편도체라는 아몬드 크기의 기관이 있다. 이 녀석의 원래 임무는 생존이었다. 수만 년 전 숲속에서 맹수 소리가 들리면 1초도 안 돼서 온몸에 경보를 올리고 도망칠 준비를 시키는 것.
문제는 이 편도체가 21세기인 지금도 그대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상사의 찌푸린 표정, 단체 카톡방에서 혼자 읽씹 당하는 상황, 엘리베이터 안의 어색한 침묵. 편도체는 이런 상황을 맹수가 달려오는 것과 거의 동일한 위협으로 처리한다.
그래서 아무 위험도 없는데 심장이 먼저 두근거린다. 내가 의식적으로 불안하다고 인지하기 전에 이미 몸이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40대 직장인이라면 이게 더 자주 일어난다. 책임은 무거워지고, 실수에 대한 부담도 커지고,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치이는 상황이 반복된다. 편도체가 과활성화될 이유가 넘쳐난다.
감정이 폭발하고 나서야 후회하는 이유
편도체에 불이 붙으면 뇌의 이성 담당 부서인 전전두피질로 가는 혈류가 줄어든다. 논리적 판단 능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게 바로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에 어이없는 말이 나오고, 나중에 왜 그랬지 하고 땅을 치는 이유다. 그 순간 뇌의 이성 시스템이 사실상 꺼진 상태였던 것이다.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뇌가 그렇게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더 문제는 이 상태가 만성화된다는 점이다. 반복적으로 불안 자극을 경험하면 편도체는 점점 더 예민해진다. 작은 자극에도 강하게 반응하도록 굳어버린다. 연기도 없는데 화재 경보기가 울리는 것처럼.
그래서 침착하자, 흥분하지 말자 하고 아무리 다짐해도 심장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의지력으로 편도체를 제어하는 건 원래 불가능하다.
3초 안에 뇌를 끄는 법
여기서 뇌과학이 내놓은 핵심 전략이 있다.
생각으로는 편도체를 이길 수 없지만 몸을 통해서는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뇌와 몸은 쌍방향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몸을 이완시키면 뇌도 따라서 안정된다.
방법은 단순하다. 불안이나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 딱 3초만 몸에 집중하는 것이다.
먼저 턱의 힘을 완전히 뺀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무의식적으로 이를 꽉 깨문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윗니와 아랫니가 닿아 있다면 이미 몸이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입을 살짝 벌리고 턱을 늘어뜨린다. 턱관절 주변에는 뇌와 직접 연결된 신경이 밀집해 있어서 턱만 풀어도 뇌는 즉각적으로 이완 신호를 받는다.
그다음 눈의 초점을 흐릿하게 만든다. 멀리 허공을 바라보듯 아무것도 보지 않는 눈을 만든다. 맹수와 싸울 때는 눈을 부릅뜨고 초점을 날카롭게 모으지만, 안전할 때는 눈이 풀린다.
마지막으로 어깨를 귀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뜨리고, 배로 깊게 숨을 들이마신 다음 들숨보다 훨씬 길게 내쉰다. 날숨이 길어지는 순간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서 흥분한 편도체에 브레이크가 걸린다.
턱이 늘어지고, 눈이 멍하고, 어깨가 축 처진 상태. 맹수 앞에서 이런 상태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뇌는 지금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경보를 강제로 끈다. 3초 안에.
회의 중에, 압박적인 상황에서, 이 동작을 속으로 해보면 신기하게도 감정이 가라앉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공간이 열린다.
예민한 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방법
급한 불은 껐지만 근본 체질을 바꾸지 않으면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뇌과학적으로 불안에 취약한 뇌를 바꾸려면 전전두피질을 단련시켜야 한다. 감정을 조절하고 충동을 억제하는 뇌의 최고 관리자다. 근육처럼 반복해서 쓰면 두꺼워진다.
UCLA의 심리학자 매튜 리버만 교수 연구팀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구체적인 단어로 표현할 때 편도체 반응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전전두피질 활동이 높아지는 것을 뇌 영상으로 직접 확인했다.
나는 지금 불안하다. 나는 지금 화가 나 있다. 나는 지금 창피하다. 이렇게 감정에 정확한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뇌 안에서 실제 변화가 일어난다. 이름을 붙이는 행위 자체가 이성 시스템을 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일 꾸준히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용서, 연민, 수용, 감사. 이 네 가지다.
나를 짜증나게 한 사람이 있을 때 저 사람도 나름의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이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분노가 줄어들고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된다. 차가 막혀서 짜증날 때 막히는구나 어쩔 수 없지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수용이다. 억지로 기분 좋은 척하는 게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에너지를 쏟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잠들기 전 5분, 오늘 하루 별일 없이 버텼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 이게 뇌를 바꾸는 가장 조용하고 강력한 방법이다.
8주간 이런 마음 훈련을 지속한 참가자들의 뇌 영상을 찍었더니 편도체 활성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동시에 면역 기능도 강화됐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예민한 뇌가 건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타인의 눈치를 왜 이렇게 보는 걸까
40대에도 카톡 답장 하나에 하루가 흔들리는 이유가 있다.
내가 나를 충분히 인정하지 않으니까 그 공허함을 채우려고 외부의 반응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타인의 평가가 곧 나의 가치가 되어버리는 상태, 인정 중독이다.
편도체는 타인의 부정적인 신호를 생존 위협으로 처리한다. 그래서 무시당하는 느낌이 맹수에게 물리는 것처럼 강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타인의 인정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아무리 칭찬을 받아도 돌아서면 또 불안해진다. 그 칭찬이 내 안에서 나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 자존감은 남보다 내가 낫다는 우월감이 아니다. 실수해도, 실패해도, 못나 보여도 그래도 나는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라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다. 이 믿음이 단단하게 자리 잡으면 타인의 평가가 들어올 자리가 없어진다.
마치며
불안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성격 문제가 아니다. 편도체라는 오래된 생존 장치가 현대의 상황에 오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감정이 폭발하려는 순간에는 턱을 풀고, 눈을 멍하게 만들고, 어깨를 내리고 길게 내쉬는 3초 리셋을 써라. 화가 치밀 때는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름을 붙여라. 매일 잠들기 전 오늘 하루를 버텨낸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줘라.
뇌는 죽을 때까지 변한다. 3개월에서 6개월 사이에 물리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40대에도 늦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이 적기다. 이제는 원리를 알고 바꿀 수 있으니까.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