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내내 불안했던 내가 40대에 인생이 편해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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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30대 중반까지 늘 불안했다.

취업은 했지만 연봉이 부족한 것 같고, 집은 있지만 내 집이 아니고, 모아둔 돈이 없고. 뭔가 항상 부족한 느낌. 남들은 다 제자리를 찾아가는데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 그게 40대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불안해하는 이유가 뭔가. 당장 굶을 것 같아서? 아니다. 쫓겨날 것 같아서? 그것도 아니다.

따지고 보면 나는 전혀 망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늘 불안했을까.


뇌가 착각하는 것들

뇌가 착각하는 것들 섹션 참조 일러스트

이게 이해가 됐을 때 꽤 많은 것이 풀렸다.

인간의 뇌는 수만 년 전에 설계됐다. 그때는 무리에서 쫓겨나면 진짜로 죽었다. 혼자서는 맹수를 이길 수 없고 먹을 것도 구하기 어려웠으니까. 그래서 뇌는 집단에서의 평판이 떨어지는 상황을 생존 위협으로 인식하도록 세팅됐다.

문제는 지금도 그 설정이 그대로라는 것이다.

취업이 안 된다. 사업이 잘 안 된다. 또래 친구가 나보다 잘 나간다. 이건 물리적으로는 아무 위협이 아니다. 근데 뇌는 이걸 호랑이가 나타난 것처럼 비상경보를 올린다. 그래서 심장이 두근거리고 밤에 잠을 못 자고 괜히 초조해진다.

40대가 되면서 이걸 알게 됐다. 내가 느끼는 불안의 상당 부분은 실제 위협이 아니라 뇌가 만들어낸 착각이라는 것을.


진짜 망했을 때 일어나는 일

진짜 망했을 때 일어나는 일 섹션 참조 일러스트

한번 생각해보자. 정말로 쫄딱 망했다고 치자.

사업 말아먹고, 빚더미에 앉고, 애인도 떠나고, 친구들도 연락이 끊겼다. 주변 사람들이 다 등을 돌렸다.

그런데 그 바닥까지 내려가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생긴다. 더 이상 나한테 기대를 거는 사람이 없어진다. 눈치 볼 사람이 없어진다. 실망시킬 사람이 없어진다. 이상하게도 그게 자유로 느껴진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30대 후반에 하던 일이 크게 어긋난 적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이제 저 사람 끝났다는 분위기였다. 그 순간 역설적으로 마음이 편해졌다. 더 잃을 게 없으니까. 어차피 바닥이면 이제 올라가는 일만 남았으니까. 그때부터 오히려 하고 싶은 것들을 하게 됐다.

기대치가 제로인 상태가 얼마나 강력한 출발점인지, 그걸 그때 처음 알았다.


못 하는 이유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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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못 하고 있다면 솔직하게 물어보자. 왜 못 하고 있는가.

유튜브를 시작하고 싶다. 아는 사람이 보면 어쩌지. 글을 써보고 싶다. 잘 못 쓰면 창피하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다. 실패하면 욕 먹겠지.

전부 창피함 때문이다.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 때문이다.

40대도 마찬가지다. 나이 먹어서 저게 뭐냐는 소리 들을까봐 새로운 걸 못 시작한다. 이 나이에 실패하면 더 창피하다는 생각에 도전을 미룬다. 근데 그러다 10년이 지나고 50대가 된다. 그때도 똑같은 이유로 못 한다.

창피함이 행동을 막는 자물쇠다. 그 자물쇠를 푸는 열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어차피 다 죽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거창한 철학이 아니다. 오늘 아무리 창피한 일이 생겨도 내일 눈을 못 뜨면 그게 끝이다. 반대로 지금 나를 무시하는 사람도, 나보다 잘 나가는 사람도 언젠가는 똑같이 사라진다. 그 관점에서 보면 창피함이라는 게 얼마나 사소한 건지가 보인다.


불안할 때 실제로 쓸 수 있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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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은 알겠는데 현실에서 어떻게 하냐고. 나도 그게 제일 어려웠다.

실제로 도움이 됐던 방법들이 있다.

첫 번째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끝까지 돌려보는 것이다. 이번 일이 완전히 잘못되면 어떻게 될까. 잘리면 실업급여 받으면서 다른 일 찾으면 된다. 사업이 망하면 다시 취업하면 된다. 막상 바닥까지 찍어보면 생각만큼 지옥이 아니다. 뇌가 만들어낸 공포가 실제보다 훨씬 크다는 걸 알게 된다.

두 번째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는 것이다. 뭔가를 시작하면 주변에 알리고 싶어진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압박이 된다. 알리는 순간 남들의 기대가 생기고, 그 기대가 부담이 되어 발목을 잡는다. 혼자 조용히 하다가 결과가 나왔을 때 보여주는 게 낫다.

세 번째는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인생 모른다. 지금 저렇게 살면 안 되지 싶었던 사람의 상황이 나중에 내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때 그 판단이 나 자신을 공격하는 칼이 된다. 남에게 관대한 것이 결국 나에게 관대해지는 길이다.


마치며

30대 내내 불안했던 내가 40대에 인생이 편해진 이유 마치며 섹션 참조 일러스트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망하지 않은 것이다.

40대가 되면 이게 그냥 위로의 말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주변에서 갑자기 아픈 사람, 사고가 난 사람들을 보게 된다. 멀쩡하게 출근하던 사람이 어느 날 없어지는 걸 경험한다. 그때부터 오늘 눈을 뜬 것 자체의 무게가 달라진다.

취업이 안 됐어도 살아 있다. 사업이 잘 안 돼도 살아 있다. 연애가 안 풀려도 살아 있다. 살아 있으면 다음이 있다.

인생을 너무 비장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 이래야만 한다는 기준을 내려놓아도 된다. 힘을 빼야 더 잘 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운동도 힘을 빼야 잘 되고, 글도 힘을 빼야 잘 써지고, 관계도 힘을 빼야 편해지듯이.

쫄지 않아도 된다. 생각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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