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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얼마 전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가 머릿속에 계속 남는다.
성욕이 강한 게 문제가 아니라 잘못 다루는 게 문제라는 말.
그리고 더 충격적인 말 하나.
오히려 욕구가 사라지는 게 훨씬 더 위험한 신호라는 것.
성욕을 억압하는 사람들의 심리 — 도덕적인 척이 가장 힘들다
주변을 떠올려보면 꼭 있다. 성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유난히 눈살을 찌푸리거나, 누군가 조금이라도 그쪽 방향으로 실수하면 가장 먼저 손가락질하는 사람. 나도 어느 시기엔 그런 역할을 자처한 적이 있었다. 사회생활에서 깔끔한 이미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고, 그 강박이 결국 내 안의 욕구를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게 막고 있었던 것 같다.
심리학에 반동 형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내 안의 욕구가 너무 강해서 그걸 인정하기 싫을 때, 사람은 정반대로 행동하기 시작한다는 것. 욕구를 부정하기 위해 오히려 그것에 가장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는 것. 자신이 꼭 틀어막아야 할 문을 다른 사람에게는 아예 없어야 한다고 외치는 셈이다. 나는 이게 위선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고통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자기 안의 욕구와 싸우느라 지쳐 있는 사람의 모습.
신체화 증상 — 억누른 욕구가 몸으로 나오는 방식
40대 미혼 남성이라는 위치는 꽤 독특한 사회적 맥락 위에 있다. 결혼도 안 했고, 연애도 뜸하고, 그렇다고 성적인 존재라는 걸 드러낼 자리도 딱히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로 빠진다. 일이 많을수록 다행이다 싶고, 바쁠수록 다른 생각이 줄어드는 게 오히려 편하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그게 건강한 방식인가에 대해선 이제 좀 회의가 생긴다. 내 안에 올라오는 에너지를 일이나 통제라는 출구로 돌리는 것, 겉으로는 성실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에너지의 원천이 뭔지 스스로도 직면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일 수 있다. 완벽한 척, 깔끔한 척, 욕망 없는 척 살아가면서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원인 모를 두통, 이유 없는 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면. 말로 꺼내지 못한 감정과 욕구가 몸의 언어로 나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좀 뜨끔했다.
성욕 감퇴가 우울증 초기 증상일 수 있는 이유
가장 충격적이었던 말은 이거다. 성욕이 강한 것보다 욕구 자체가 사그라드는 것이 훨씬 더 위험한 신호라는 것. 사회적으로는 욕구가 없는 사람이 성숙하고 절제력 있는 사람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정신의학적으로 보면, 모든 욕구의 소실은 우울증의 핵심 증상인 무감동증의 시작일 수 있다고 한다.
뭘 봐도 재미없고, 먹어도 맛없고, 잠도 이상하고, 좋아하던 것도 더 이상 설레지 않는 상태. 그건 어른이 된 게 아니다. 뇌의 보상 회로 자체가 꺼진 상태라는 것이다. 40대에 종종 느끼는 그 묘한 무감각함 — 예전엔 설레던 것들이 지금은 그냥 그렇고, 뭔가를 간절히 원하는 감각이 흐릿해지는 것 — 그게 사실은 번아웃이나 우울증의 경계선에 걸쳐 있을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도파민 감소와 성욕 감퇴의 연결고리
만성 스트레스가 쌓이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무너지고 그 여파로 의욕 호르몬인 도파민도 함께 떨어진다고 한다. 도파민이 떨어지면 의욕이 떨어지고, 의욕이 떨어지면 욕구가 줄어들고, 욕구가 줄어들면 삶 전체의 동력이 서서히 꺼진다. 그래서 성욕의 감퇴는 단순히 나이 들면서 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 몸과 뇌가 보내는 조용한 구조 신호일 수도 있다.
성욕을 건강하게 관리하는 방법 — 억누르지 말고 흐르게 하라
억누르는 건 답이 아니다. 욕구는 억눌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모습을 바꿔 다른 방향으로 터져 나올 뿐이다. 그래서 핵심은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잘 흐르게 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승화라고 부른다. 강한 에너지를 창조적이고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 운동, 예술, 글쓰기, 무언가를 만드는 일. 미켈란젤로가 다비드상을 만들어낸 에너지도, 베토벤이 귀가 안 들리는 상태에서 교향곡을 쏟아낸 에너지도, 결국 인간 내면의 강렬한 본능적 힘을 어딘가로 흘려보낸 결과라는 시각이 흥미로웠다. 에너지가 있다는 건 축복이다. 문제는 그걸 어디로 흘려보낼지다.
운동과 수면 — 욕구 조절의 가장 현실적인 방법
나는 요즘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특별한 목적 없이, 그냥 몸을 움직이는 것. 일주일에 세 번, 유산소와 근력을 병행한다. 운동이 호르몬 균형을 잡아준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몸으로 느끼는 건 조금 달랐다. 자고 나면 다르고, 움직이면 다르다. 수면 부족이 충동 조절 능력을 크게 떨어뜨린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잠도 결국 욕구 관리의 일부인 것이다.
자책하지 말고 메타인지를 활용하라 — 욕구는 살아있다는 증거다
40대가 되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 예전처럼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일이 좀 줄었다는 것이다. 나는 왜 이러냐, 왜 이런 생각을 하냐 — 이런 자책은 오히려 욕구를 더 강화시킨다. 보지 말라고 하면 더 보이는 법이다.
지금 내 안에 에너지가 차오른 상태구나, 이걸 어디로 돌려볼까라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 욕구가 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다만 그 에너지를 잘 다루는 어른이 되는 것, 그게 마음 건강의 핵심이라는 말이 40대인 지금 이상하게도 가장 와닿는다.
중년의 삶이란 결국 욕구가 줄어드는 과정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그 욕구가 너무 빠르게 사라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살피는 일인지도 모른다. 꺼지지 않게. 그냥 조용히, 잘 흐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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