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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무대 영상을 보다가 아이돌 팔뚝이나 다리를 보고 "진짜 말랐다"는 생각은 했는데, 거기서 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댓글 창을 보다가 멈췄다. "몸매 미쳤다", "다이어트 자극받고 간다", "저 몸 어떻게 만들어요." 수천 개의 좋아요. 그 몸이 아름다움의 기준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걸 갖고 싶어한다는 걸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이상하다고 느꼈다. 걱정스럽다는 표현이 더 맞을 수도 있고. 근육도 없고, 살도 없고, 그냥 뼈에 피부가 붙어있는 수준인데—그게 왜 아름다운 걸까?
그 의문이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아서 이 글을 쓰게 됐다.
서양 친구들이 K팝 아이돌 보고 하는 반응
미국이나 유럽 친구들이 K팝 아이돌 영상 보고 종종 하는 말이 있다. "Aren't they too skinny?" 예쁘다는 반응보다 걱정하는 반응이 먼저 나온다. 처음엔 문화 차이겠거니 했는데, 생각해보면 그게 꽤 흥미로운 지점이다.
서양 대중문화가 띄워주는 몸은 좀 다르다. 베욘세, 제니퍼 로페즈, 킴 카다시안—이들의 공통점은 볼륨이 있다는 거다. 근육도 있고, 살도 있고, 공간을 차지한다. 물론 서양도 패션업계는 여전히 깡마른 몸을 밀고 있고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니다. 다만 대중적인 아름다움의 기준 자체가 꼭 '마름'과 동의어는 아니다.
그런데 동아시아, 특히 한국에서는 다르다. 뼈가 보여야 한다. 턱선이든 쇄골이든 선명해야 한다. S라인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그것도 결국 극도로 마른 몸 위에서만 허용되는 S다. 근육이 있으면 "운동선수 같다"는 말을 듣는데, 그게 칭찬인지 아닌지 애매한 문화가 여전히 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사실 이건 꽤 오래된 이야기다
역사 얘기를 꺼내면 지루해질 수 있는데, 진짜 짧게만 하자.
동아시아 문학에서 전통적으로 미인을 묘사하는 표현들이 있다. '버들가지 같은 허리', '갈대처럼 가는 몸', '봄바람에 휘어질 듯한 자태'. 공통점이 보이는가? 다 부서질 것 같고, 연약하고, 가늘다.
이게 단순히 취향의 문제가 아니었다. 가냘픈 몸은 사실 계급의 증거였다. 논밭에서 일하는 여성의 몸은 단단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아무 노동도 하지 않고 집 안에서 곱게 자란 양반 가문 여성의 몸은 가늘고 연약했다. 즉, 마른 몸은 "나는 일 안 해도 되는 집안 출신"이라는 신체적 신호였던 거다.
중국의 전족 문화를 떠올리면 이 논리가 더 극명해진다. 발을 천으로 감아서 성장을 막고, 걷지도 못하게 만드는 것. 그게 아름다움이었다. 쓸모없는 몸, 아무것도 못 하는 몸이 오히려 고귀함의 표시였다.
시대가 달라졌지만, 그 미의 언어는 생각보다 오래 남아있다.
그리고 거기에 K팝 산업이 얹혔다
역사적 배경이 토양이라면, K팝 산업은 거기에 물과 비료를 준 셈이다.
연습생들은 10대 초반부터 체중 관리를 한다. 전직 아이돌 인터뷰에서 "하루 800칼로리", "데뷔 전에 한 달에 10kg 감량" 같은 말들이 심심찮게 나온다. 그 결과물이 무대 위에 서고, 우리는 그걸 '자연스럽게 저렇게 타고났나 보다'라고 받아들인다.
카메라도 한몫 한다. 세로로 긴 프레임, 특정 조명과 각도, 후보정까지. 화면 속 몸은 실제보다 훨씬 가늘어 보인다. 근데 우리는 그 이미지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기준으로 삼는다. 존재하지 않는 기준을 향해 몸을 깎기 시작하는 거다.
SNS는 이걸 무한 복제한다. "○○ 다이어트 식단", "○○ 몸매 만들기" 콘텐츠가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고, 우리의 피드를 채운다. 비교하고, 자극받고, 다이어트 결심하고, 다시 비교하는 사이클.
근데 여기서 좀 불편한 이야기를 하나 해야 할 것 같다
왜 유독 동아시아에서 이 문화가 더 강하게 자리잡혔을까 생각해보면, 단순히 외모 기준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유교 문화권에서 오랜 시간 여성에게 요구된 것들이 있다. 조용히 있을 것, 나서지 말 것, 많은 공간을 차지하지 말 것. 이 압력이 신체적으로도 내면화된 게 아닐까 하는 해석이 있다. 작은 몸, 적은 공간, 최소한의 존재감. 아이돌의 마른 몸이 아름다움 이전에 무해함과 순종의 이미지로 읽힌다는 것.
직접적으로 말하면—먹지 않는 몸, 욕구를 절제한 몸이 '예쁘다'고 여겨지는 문화는, 어쩌면 여성이 욕망을 갖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보는 시선과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닐까.
불편하지만,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라고 느꼈다.
요즘은 조금 바뀌고 있기도 하다
최근 헬스 유튜브가 뜨고, 운동하는 몸, 근육 있는 몸도 예쁘다는 인식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일부 아이돌들은 건강한 식단이나 운동 루틴을 공개하기도 한다.
근데 솔직히, 이게 진짜 변화인지는 잘 모르겠다. '마른 몸'에서 '근육 있는 몸'으로 기준이 바뀐 거라면, 결국 몸이 어떤 형태로든 계속 평가받아야 한다는 전제는 그대로 아닌가.
진짜 변화는 '어떤 몸이 예쁜가'를 넘어서, '몸이 왜 항상 평가받아야 하는가'를 묻는 데서 시작하는 것 같기도 하다.
뮤직비디오 속 그 가느다란 팔을 보고 예쁘다고 느끼는 감각을 탓하고 싶진 않다. 그 감각은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오랫동안 문화가 심어놓은 거니까.
다만 그 감각이 어디서 왔는지 알면, 거울 앞에서 조금은 다르게 설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을 나누고 싶었다.
이 글은 특정 체형을 비판하거나 옹호하려는 게 아닙니다. 모든 몸은 그 자체로 괜찮습니다. 다만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감각의 배경을 한 번쯤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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