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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학교, 비슷한 성적, 딱히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뭘 해도 잘 풀리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면접을 보면 붙고, 사람을 만나면 좋아하고, 일을 시작하면 되는 그런 사람. 반대로 저는 비슷하게 준비하고 비슷하게 노력했는데 뭔가 한 끗씩 안 되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그냥 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면 집안 배경이라고. 그 사람이 금수저라서 그런 거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습니다.
40대가 되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그게 운도 배경도 아니었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성공을 결정하는 건 스펙이 아니라 심리 상태였다
오랜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게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학벌도, 자본도, 심지어 재능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특정한 심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6개월, 1년 이상 흔들리지 않는 집중력.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버티는 인내력. 결정적인 순간에 차분하게 내리는 결단력.
이것들은 의지력이나 성격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문제입니다. 자신감과 추진력을 만드는 테스토스테론, 불안과 위축을 만드는 코르티솔. 이 두 가지의 비율이 그 사람의 심리적 상태를 결정하고, 그 심리적 상태가 행동을 결정하고, 그 행동이 결국 결과를 결정합니다.
수십 년간 아프리카 개코원숭이 집단을 연구한 결과가 흥미롭습니다. 무리에서 지위가 높은 개체는 코르티솔 수치가 낮습니다. 차분하고 여유 있습니다. 지위가 낮은 개체는 코르티솔이 높습니다. 항상 불안하고 주눅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호르몬 상태가 지위를 더 공고히 하거나, 더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영국 공무원 집단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왔습니다. 계급이 높을수록 코르티솔이 낮고, 낮을수록 높았습니다.
40대에 이 연구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꽤 오래 멍하게 있었습니다.
20대의 나는 왜 늘 불리한 자리에 서 있었나
돌이켜보면 알 것 같습니다.
저는 중요한 자리에 가면 늘 긴장했습니다. 면접장에서, 발표 자리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 그 긴장이 겉으로 티가 났고, 티가 나면 더 긴장했습니다. 말이 빨라지고, 눈을 피하고, 대답을 서둘렀습니다. 준비를 아무리 많이 해도 그 자리에서 제 실력의 절반도 못 냈습니다.
반면에 그 잘 풀리던 친구는 달랐습니다. 어떤 자리에서도 여유가 있었습니다. 질문을 받으면 잠깐 생각하고 천천히 대답했습니다. 눈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 여유가 상대방에게 신뢰감을 줬고, 신뢰감이 기회를 불러왔습니다.
그 친구가 더 용감하거나 더 대담한 사람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코르티솔이 낮은 사람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저는 반대였고요.
자세가 호르몬을 바꾼다는 것
이쯤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연구가 하나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사회심리학자 에이미 커디가 진행한 '파워 포즈' 실험입니다.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서, 한 그룹은 몸을 크게 펴는 자세를 2분간 취하게 했습니다. 어깨를 펴고, 허리에 손을 얹고, 다리를 넓게 벌리는 자세. 다른 그룹은 몸을 웅크리고 고개를 숙인 자세를 2분간 유지하게 했습니다.
단 2분 후, 혈액 검사 결과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몸을 펼친 그룹은 테스토스테론이 올라가고 코르티솔이 낮아졌습니다. 웅크린 그룹은 반대였습니다. 25% 가까이 차이가 났습니다.
자세가 뇌를 속인 겁니다.
뇌는 몸의 신호를 받아서 호르몬을 분비합니다. 몸이 팽창된 자세를 취하면, 뇌는 "지금 내가 높은 지위에 있구나"라고 인식하고 그에 맞는 호르몬을 내보냅니다. 반대로 몸이 웅크려져 있으면, "나는 지금 위협받고 있다"고 인식하고 불안 호르몬을 올립니다.
40대가 되어 이 연구를 읽고 나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20대에 그 자리들에서 몸을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를.
말의 속도가 사회적 지위를 말한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말하는 속도입니다.
사회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은 말이 느립니다. 질문을 받으면 바로 대답하지 않습니다. 1초, 2초 여유를 두고 생각한 후에 천천히 말합니다. 반면 불안한 사람은 말이 빨라집니다. 침묵을 못 견디고 서둘러 채우려 합니다.
이게 단순히 성격 차이가 아닙니다. 여유로운 사람은 침묵이 불편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대답이 조금 늦어도 상대가 기다려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확신 자체가 상대에게 신뢰감을 줍니다.
저는 40대가 되면서 의도적으로 말의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습니다. 침묵이 불편했고, 빨리 뭔가를 채워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니까 달라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회의에서 발언할 때, 처음 만나는 사람과 대화할 때, 제 말이 조금 더 무게 있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상대방이 저를 대하는 방식도 미묘하게 달라졌습니다.
실제로 높은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
이 모든 이야기의 핵심은 이겁니다.
실제로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아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입니다. 뇌는 현실과 인식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내가 높은 곳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면, 뇌는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에 맞는 호르몬을 분비합니다.
흑수저든 금수저든, 지방대든 명문대든, 지금 직급이 높든 낮든. 그것보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어떤 자세를 하고 있는지, 눈을 피하지 않는지, 말을 서두르지 않는지, 이것이 더 직접적으로 내 성과에 영향을 미칩니다.
40대에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솔직히 좀 억울했습니다. 20대에 알았다면 얼마나 달랐을까 하고.
늦지 않았다는 것
그런데 또 이렇게도 생각합니다.
40대는 이 원리를 실천하기에 오히려 좋은 나이일 수 있습니다. 20대처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이 조금 덜합니다. 비교에서 조금은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의 경험이 쌓였기 때문에 진짜 여유와 가짜 여유를 구분할 줄 압니다.
어깨를 펴는 것. 눈을 피하지 않는 것. 말을 서두르지 않는 것.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거창한 자기계발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 회의실에 들어설 때,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 설 때, 딱 그 순간에 몸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뇌는 생각보다 쉽게 속습니다. 그리고 그 속임이 쌓이면, 어느 순간 속임이 아니라 진짜가 됩니다.
저는 지금 그 과정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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